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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중고 초창기 이야기(보금자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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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우리 모교 경남중고등학교의 개교기념일은 4월 30일이다.이는 일제시대인 1942년 4월 30일 부산공립제이중학교가 개교한데서 유래한다.당시 신입생 110명 모집에 한국인 40명,일본인 70명 정원이었다. 천 명 이상이 지원하였다 하니 그 경쟁은 매우 치열하였음을 알 수 있다.특히 한국인 정원은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부산 경남 지역의 가장 우수한 한국인 학생들만?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올 수 있었다.

?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킨 후 군국주의 체제를 강화하면서 1938년 3월 기존의 조선 교육령을 개정하게 된다.조선 총독부는 교육령을 통해 조선의 교육정책을 운용하였는데 일면일교주의라는 정책을 마련하여 초등학교의 시설을 확장해 나갔고, 조선인이 다니는 중등교육과정의 고등보통학교(약칭 고보)는 그 명칭을 일본인 학교와 같이 중학교로 바꾸는 한편 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 재학하는 명목적인 제도도 마련한다.이렇게 하여 우리 모교의 전신인 부산공립제이중학교(약칭 이중)가 서대신동의 옛 부산여고의 자리(당시에는 부산공립고등소학교의 자리)에서 문을 열게 된다.이중이 개교하면서 일본인 학교였던 부산공립중학교는 부산공립제일중학교(약칭 일중)로 명칭이 바뀌게 된다.

? 이렇게 개정된 교육령은 내선일체를 앞세워 식민지 조선인과 일본인의 차별을 없앤다는 명분이었지만 황국신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일제의 군국주의 체제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1938년에 시행된 이 개정 교육령에 의해 한국인 학교의 명칭도 일본인 학교와 같이 바뀌게 된다. 동래고등보통학교(약칭 동래고보)는 동래중학교로, 경남여고의 전신인 부산여자고등보통학교(약칭 부산여고보)가 부산항고등여학교(약칭 항고녀)로 이름이 바뀐 것도 이 무렵 일이다.당시 한국인이 다니던 초등학교 이름도 보통학교에서 소학교로 바뀌게 되고 1941년도에 이르러 국민학교로 재개칭된다.이렇게 바뀐 국민학교, 중학교의 명칭은 해방 후에도 당분간 그대로 사용하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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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인 17.09.01. 23:04

와, 많이 아네. 속편이 계속 기대된다. 여기도 좋지만 동창회보에 연재해야 되는거 아이가? 얼마전 작고하신 한준석고문(3회, 김형철의 장인 어른)이 오래전에 도쿄를 갔었는데, 거기에 경남중 동창회가 있었다 한다. 물론 모두 일본사람들이었고. 다들 80대 중후반이니 아직도 동창회는 이어지고 있겠지? 본부 동창회에서, 한국전쟁 참전 용사를 초청하듯이 이분들을 한번 불러서 식사모시고 사진찍으면 좋지 않을까? 친일-반일 감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건데.일본인 1회 졸업생이 부끄러운 역사는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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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 17.09.02. 08:53

어릴 때, 어른들께서 '누가 누가 항고녀 댕겼다더라~'는 말을 가끔 들었는데, 그 때는 막연히 '한고녀', 즉 한국고등여학교의
줄인 말이겠거니 여겼는데, 오늘 처음 ' 항고녀' 단어를 접하니,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눈을 뜨게 해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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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두찬 17.09.02. 14:46

ㅎ 수인대기자님, 잘 지내지요? 과찬의 말씀에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동기들과 술좌석에서 안주삼아 얘기하던 것을 막상 글로 쓸려하니 모르는 것도 많고 검증해야 할 부분도 한두군데가 아닌 것 같네요. 앞으로도 계속 많은 관심과 보충 설명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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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두찬 17.09.02. 15:01

철박사님,반갑소이다.항고녀에 얽힌 애기 하나 해 드리지요. 실화인지 모르지만..
당시 일본인 여학교였던 부산고등여학교(부산고녀)가 있어 부산여고보를 부산제2고녀로 개칭할라 했는데 동문과 학부형의 반대로 부산항고녀로 바꾸었다는 후문이 있소이다.제2라는 명칭이 상당히 거부감이 들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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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7.09.02. 18:40

문회장은 한번 들어면 그대로 외워버리는 비상한 재주의 소유자 인가봐.
토색모 친구들과 어울려 얘기 할때 사람이름 지명 년대까지
줄줄 얘기 하니 정말 대단 하시오.
특히 일본인들과 관계, 부산고녀, 경남고녀,중고 분리할때
선배들의 이야기등 끝없이 알고 있다오.
우린 들어도 금방 잊어 버리고 마는데^^
대단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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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7.09.02. 20:03

문회장님의 설명을 도우기위해 조선교육령에 대해 사족을 달면 (고3 수업내용임)
1910년 8월 초대 총독 데라우치[寺內正毅]의 교육방침은 우리 민족에게 이성이 발달할 수 있는 교육기회를 주지 않는 데 있었다. 일본신민화(日本臣民化)의 토대가 되는 일본어의 보급, 이른바 충량(忠良)한 제국 신민과 그들의 부림을 잘 받는 실용적인 근로인·하급관리·사무원 양성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와 같은 취지와 교육방침을 가지고, 데라우치는 1911년 8월에 전문 30조로 이루어진 제1차 「조선교육령」을 공포하였다. 이에 따라 보통학교·고등보통학교·여자고등보통학교·실업학교·사립학교 등의 교육규칙과 학교 관제 등이 공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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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7.09.02. 20:05

특징 (제1차 조선교육령)
① 교육 연한의 단축 : 보통학교 6년 → 4년
② 학교의 폐지 및 통제 :
- 한성사범학교 폐지
- 관립 고등보통학교에 1년 과정의 사범과 + 1년 이내의 교원 속성과 만듬
(식민 교육을 위한 일본인 교원 양성 목적)
- 외국어학교와 성균관 폐지 → 경학원으로 대체
- 서당 통제(민족주의 교육)
③ 보통교육(4년제)의 실시
- 일반적 지식과 기능을 가르치고 국민으로서의 성격을 함양
(일본어의 보급 목적)
- 읽기·쓰기·셈하기에 중점을 둠
- 국어(조선어) 일본어 한문 산수가 필수 과목.
특히 일본어와 수신(도덕) 중시
영어는 선택 과목으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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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7.09.02. 19:30

④ 고등보통교육(4년제, 여자는 3년, 일본어 중학교는 5년)
??? - 실제 생활에 가장 적절한 인물을 양성하는 데 중점을 둠
? ? - 교과목으로는 수신(도덕)·국어 및 한문·일본어·역사·지리·수학·이과·실업 및
????? 법제·경제·습자·도화·수공·창가·체조·영어 등이었음
? ⑤ 실업 교육
??? - 농업·상업·공업에 관한 지식과 기능을 베푸는 것이 목적
? ⑥ 전문학교 교육
???- 고등 수준의 학술 및 기술을 교수하는 대학보다 다소 간소한 고등 교육 기관
????? 인 전문학교는 1915년 공포된 <전문학교규칙> 및 <개정사립학교규칙>에
????? 따라 처음으로 설립 기준 마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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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7.09.02. 19:30

(이것은 한국인을 위한 사립 고등 교육기관을 말살하고 관립 전문학교만을
????? 통하여 그들이 교육시킨 극소수의 한국인만을 식민 통치 기구의 하급관리로
????? 이용하려는 식민지정책에서 나온 것)
?? → 관립 전문학교의 설립 : 경성 법학전문학교(1916),
?????? ?경성 의학전문학교(1916), 경성 공업전문학교(1916), 수원 농림전문학교
? ?→ 사립 전문학교 : 연희 전문학교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1917.3)
? ⑦ 대학의 미설치 : 고등 교육 기관인 대학은 설치되지 않음
? ⑧ 서당규칙(1918)
??? - 서당설립에 대한 신고제를 실시
????? (반일적인 서당 설립을 억제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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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7.09.02. 19:31

2. 사립학교 교육 통제
? 1) 변천 과정 : 사립학교령(1908) → 사립학교규칙(1911)
???????????????????? → 개정사립학교규칙(1915)
? 2) 내용?
?? - 학교의 설치 목적 위치, 교장과 교감의 취임, 교사 임용, 교과용 도서채택 등? 에 있어 총독부의 인가를 받아야 함
?? -?지리역사 성경을 가르치지 못하고 교원은 일어에 통달해야 한다는 것
? 3) 결과
?? - 사립학교의 수는 점차 감소하기 시작(1910→1912→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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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7.09.02. 19:34

제2차 조선교육령 (1922~1938)
1) 목적 : "일시동인"
? -?표면상 : 일본의 학제와 동일하게 정비하여 조선인과 일본인의 교육 동등
??-?실제 : 초급 교육과 기술교육만을 강행함으로써 우리 민족을 기만하고
????????????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보급시키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행됨.
? - 보통학교에 일본 역사와 일본지리 실업 교과 등을 신설하여 일본 문화 주입
???? but, 저급한 수준의 직업 교육만을 실시함
?2) 개정 내용(제1차 조선교육령과 비교)
? ① 수업 연한의 연장 : 보통학교는 4년 → 6년으로 연장
??????????????????????????????? 고등 보통학교 3~4년?→ 5년으로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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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7.09.05. 01:26

② 국어(조선어)의 필수과목 지정 : 폐지되었던 국어를 필수과목으로 부활.
? ③ 사범학교 설치 : 사범 교육은 독립된 사범학교에서실시
????????????????????????????수업 연한은 남자사범 6년, 여자사범 5년
? ④ 전문학교 교육의 강화 사립 전문학교들이 내실을 꾀하고 시설확충에 힘씀
? ⑤ 대학의 설치 : 대학에 관한 규정 새로 만듬? → 한국 안에서 고등 교육 기관
?의 설립을 가능하게 함. 수업 연한은 예과 2년, 본과 3~4년, 일본인과 한국인의
?공학 허용. 경성제국대학 설치?
? ⑥ 복선제 도입 : 일본인을 위한 교육제도와 한국인을 위한 교육제도 따로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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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7.09.02. 19:36

제3차 조선교육령(1938~1943)
1) 목적 : 모든 교육 내용에서 일본적인 것이 보다 강화됨
????????????? 수업을 일본어로 할 것 강요
????????????? 철저한 황국 신민화 교육을 실시
?2) 개정 내용
? ① 교명의 변경 : 보통학교를 심상 소학교로
????고등 보통학교를 중학교로, 여자 고등 보통학교를 고등 여학교로 변경하여
??? 일본인 학교와 동일하게 사용함.
??? 한편, 1941년 제3차 조선교육령을 개정하여 황국신민화 교육을 더욱 강화.
????소학교·국민학교로 바꾸는 국민학교령을 공포
????교과목을 국민과·이수과·체련과·예능과·직업과로 통합
? ② 국어·국사의 폐지 : 수의과목으로?변경(즉, 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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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7.09.02. 19:37

③ 3대 교육방침 : '국체명징', '내선일체', '인고단련' 등을 강조
????????????????????????? 전시체제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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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7.09.02. 19:38

제4차 조선교육령(1943~1945)
<교육에 관한 전시비상조치령>
?① 교육의 군사 체제화 : <학생 동원 체제 정비에 관한 훈령>, <학도 동원 본부의 설치>, <학도 근로령>, <결전 교육 조치 요강> 등의 법령 공포.
?학교 교육을 전쟁수행의 도구로 만듬
?② 수업 연한의 축소 : 중학교와 고등 여학교의 수업 연한을 4년으로 축소.
?③ 국어·국사의 완전 폐지 : 명목상의 수의과목도 없어짐. 일본어 교육 강화
?④ 교과목의 통폐합 : 국민과·이수과·체육과·예능과·외국어과로 통합
?초중등학교에서는 체련과가 중시
?국민학교의 직업과도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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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7.09.02. 19:39

제5차 조선교육령(1945.5~1945.8)
<전시교육령>
?- 전쟁 막바지인 1945년 5월에는 <전시교육령>을 공포하여 모든 학생들의 결전
?태세 확립을 외치면서 교직원과 학생들로 하여금 '학도대'를 결성하도록 함.
?- 이를 통해 학생들이 곧바로 군대 조직화됨
?- 이후 교육은 의미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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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7.09.02. 19:51

제2차 조선 교육령 시행 배경

조선 총독부는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교육방침에 따라서 1921년 1월 임시 교육조사위원회를 개최하여, 일본 본토의 교육제도에 준거한 학제의 개혁을 심의케 했고, 1922년 2월에는 교육령을 전면 개정하여 제2차 '조선교육령'을 공포하였다.
교육령을 개정하여 표면상 일본학제와 동일하게 함으로써 융화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기본의도가 다른 곳에 있었음은 자명한 일이었고 '2차 교육령'에 담긴 '문화'란 이름의 교육정책 내면에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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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7.09.02. 19:51

그러나 이것은 3·1 운동 후에 일어난 자극된 것에 불과하였다. 사이토의 문화정치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학교 교정에 심어져 있는 무궁화를 뽑고 '사쿠라(벚꽃)'를 심도록 하는 데까지 뻗어나갔다. 사이토 총독의 문화정치는 전대(前代)의 무단정치보다 더 가혹한 통치방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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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7.09.02. 20:01

제3차 조선 교육령 시행 배경
1931년 9월 만주 사변을 일으켜, 1932년 초에는 만주에 '만주국'을 세워놓고, 1933년 10월 국제 연맹에서 탈퇴하는 등 일본은 군국주의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에 군국주의자들은 한국에 대해서도 교육을 통한 민족말살(民族抹殺)정책을 사용하게 되었다.
1936년 8월 5일 우가키 가즈시게가 물러나고 7대 총독으로 미나미 지로가 취임하였다. 그는 1929-1936년까지 조선군사령관·일본유군대신·관동군사령관을 역임한 자로, 일본 내에서도 전쟁확대론자의 거물이었다.
그는 1938년 3월 칙령 제103호로 제3차 '조선교육령'을 개정·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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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7.09.02. 20:01

제4차 조선교육령 시행
1941년부터 일본은 전시(戰時)에 호응하여 전문학교 이상의 수업연한을 단축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총독부는 첫해인 1941년에 3개월(12월 졸업), 1942년부터는 6개월(9월 졸업)을 단축시켰다. 이렇게 총독부는 전문학교의 수업연한을 단축하고, 1943년 3월에는 종래 조선교육령을 근본적으로 개정하여 4월 1일에 시행하였다. 즉 대학·예과·전문학교·중학교·고등여학교·실업학교·사범학교 등에 학제개혁을 단행하였다. 또한 1945년 5월 일본정부는 학부의 결전태세(決戰態勢)확립을 위하여 '전시교육령(戰時敎育令)'을 공포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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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7.09.02. 19:56

전시교육령
1945년 5월 일본정부는 학부의 결전태세(決戰態勢)확립을 위하여 '전시교육령(戰時敎育令)'을 공포하였다. 제1조는 '학도는 진충(盡忠)으로써 평소 길러낸 교육의 정화(精華)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을 본분으로 한다'이고, 제2조는 '교직원도 솔선수범하여 학도와 더불어 전시에 긴절한 요무(要務)에 이바지한다'이며, 제3조는 '학교는 교직원 및 학도로써 학도대(學徒隊)를 조직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1945년 7월 총독부 명령으로 각급학교는 학도대를 결성하고, 정규교육보다 근로봉사 내지 방공호 작업·군사훈련에 더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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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인 17.09.02. 20:44

미노, 새년(새 카페)과 더불어 신났네^^ 신혼때 하룻밤 몇번씩하던 정열로 ㅋㅋ 암튼 뜨겁게 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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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흥석 17.09.02. 21:13

엘에이에 1회 졸업생이신 최성근 선배님이 계십니다. 한국에서 학원 이란 잡지사에 근무 하셨으니 수인공의 대선배님도 되겠지요? 남가주 동창회 큰 행사는 꼭 참석하시고. 수년전 정동식 선배님 작고 하셨을 때 많이 섭섭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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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7.09.03. 08:17

선배님들 이야기도 문고문이 술슬 풀어 낼것 같은데. 앞으로 문고문님이 서술할 경남중고 역사에 기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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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두찬 17.09.04. 10:36

미노샘, 조선 교육령에 대해 상세히 소개해 주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궁금했던 내용들이 많이 해결되었습니다. 땡큐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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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두찬 17.09.04. 11:02

나성 동기 흥석 소장님, 반갑소. 고1 때 같이 김두용 선생님(지학 전공) 반이었던 거 같네. 당시 신원, 지흥석, 이태주,이영우 같이 크고 듬직한 칭구들이 뒷자석에 포진해 있었지. 백일승이가 반장이었고..당시 우리 선생님들한테 맞기도 많이 하고 야단도 많이 맞았지. 선생님께 야단맞을 떄도 뒷머리 긁적이며 환하게 잘 웃던 기억이 나네. 지금도 여전하시겠지.
1회 선배님 중에 사회 활동 가능하신 분은 몇 분 안되실 거 같네요. 최성근 선배님도 잘 챙겨 드리시길..그분들이 우리 모교의 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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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흥석 17.09.05. 02:16

문 원장님. 진짜 기억력이 엄청나네.. 지오이드 선생님의 성함을 이제 알겠네 남가주의 총동문이 250 여명으로 추산되는데 평준화 이후 후배님들의 영입이 저조하고 선배님들은 연로하셔서 매년 연말파티애도 겨우 50여명이 모임. 최선배님은 인연이 있어서 가끔 모시고 식사대접도 해드리곤 했는데 지난해엔 못해드린 것 같네. 말씀대로 잘 모시도록 하겠슴.. 하여간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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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호 17.09.05. 01:40

지오이드선생님 은 그때 첨 생긴 지구과학 과목을 비전공으로 가르쳤던
기억이 납니다.
3학년6반 때 담임은 길창순 선생님여셨는데, 오래전에
문원장님이 주축이되어 권순홍, 배재홍 이 선생님을 모시고 식사를
한것이 생각납니다. 그후에도 한번더 모셨는데 그후론 집을 옮겨셔서
모시지 못하였습니다. 문원장님은 은사님을 잘 챙기시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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