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중고 초창기 이야기(보금자리5)

by 소하 posted Feb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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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당시 부산공립제이중학교(약칭 이중)?교사는 문현동 지금의 문현여고 부근에 있었다 한다. 이전에 군부대가 있던 곳인데 이중이 임시 교사로 사용하다가 해방을 맞는다. 해방 후 우리 모교는10월 1일 토성동 경중(당시 부산고녀) 자리에서 개교식을 갖고 10월 9일 남일국민학교(당시 부산제일공립소학교) 자리에서 부산제이중학교라는 간판을 걸고 문을 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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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국민학교 교사 시절(1945년 10월~ 1946년 11월) 부산중학교(일중) 학생도 새로 모집하여 우리 모교와 함께하게 된다. 일중반은 따로 편성되었지만 이중 교장이신 안용백 선생께서 일중 교장도 겸하여 학교를 운영하게 되는데, 이듬해인 1946년에 부산중은 초량에서 다시 문을 열고?모교 경남중은 토성동으로 이전하여 자리를 잡게 된다. 1946년 3월 6일 모교 이름이 이중에서 경남공립중학교로 바뀌고 6월 22일에 제1회 졸업식이 거행되어 72명의 졸업생을 배출한다.?모교 경남중의 상징인 쌍백선은 이 남일국민학교 교사 시절 시작된 것으로 사료된다.?해방 후?같은 교사에서 일중반(부산중반)과 함께 생활하면서 이중생은 교복 소매에 흰색 줄이 두개인 쌍백선으로, 일중생은 흰색 줄이 하나인 것으로 구분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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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27회 동기들이 고등학교?다니던 시절 개교 30주년을 맞이하여 당시 여야당의 정계 거물이신 김택수 선배(1회)와 김영삼 선배(3회)께서 나란히 등단하여 사이좋게 만세 삼창을 부르면서 축사를 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 이 두 선배는 학년 차이가 몇 년이 될까? ?1회는 1946년에,?3회는 1949년에 졸업을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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