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자유게시판

본문시작

2009.11.26 11:14

부부간의 용서

조회 수 2892 추천 수 5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부부간의 용서

서로 갈등을 겪고 있는 부부들에게 어떤 충고를 해 달라는 요
청을 받을 때마다, 저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하고 용서하
십시오. 그리고 폭력적인 부모 아래에서 자란 젊은이에게도
저는 말합니다. 기도하고 용서하십시오. 또한, 가족에게 아무
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혼자된 어머니들에게도 말합니다. 기
도하고 용서하십시오.- 마더 테레사

수 년간의 상담을 통해 나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매
일 용서하지 않는다면 결혼 생활은 생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거듭 경험해 왔다. 또한, 아무리 고통
스러운 문제라도 ‘미안해요’ 한마디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보아 왔다.
배우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약점과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바로 이것이 결혼 생활을
건강하게 만드는 묘약인 것이다. 이것을 통해 두 사람
은 모두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깊이 의지하고 있다
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디이트리히 본훼퍼는 우리가
서로의 죄를 용서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용서 없이는
어떤 인간관계도 —결혼은 특히 그러하다—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로 권리를 주장하지 마십
시오. 서로 비난하지 말며,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마십시
오. 서로 책임을 전가하지 마십시오. 오직 자신을 받아
들이듯이 서로 용납하고, 날마다 마음으로 서로를 용서
하십시오.”
나와 아내 베레나는 31년의 결혼 생활 동안 서로 기
꺼이 용서할 마음이 되어 있는지를 확인해 볼 기회가 많
이 있었다. 결혼식을 올린 후 일 주일도 안 되어 우리는
첫 번째 위기를 맞았다. 우리 부부는 부모님과 누이들
을 신혼 집에 초대해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었다. 베
레나는 온종일 식사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냈
고, 나는 아내를 도와 누이가 선물해 준 예쁜 접시 세트
로 식탁을 차렸다. 식구들이 도착하고 우리는 식탁에 둘
러앉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식탁이 한 쪽으로 주저앉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내가 식탁 다리를 제대로 펴지
않았던 탓이었다. 음식이며 깨진 그릇들이 마루에 엉망
으로 나뒹굴었고, 아내는 울음을 터트리며 방으로 들어
가 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몇 시간 후에 우리는 이 봉
변에 대해 웃으며 털어 버릴 수 있었고, 이제는 가족의
추억 거리가 되어 가끔 화제에 오르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이 여덟 명이 되기까지 우리 부부간에
는 많은 불화 거리가 있었다. 저녁마다 아내는 아이들
을 목욕시키고 잠옷을 입혀야 했고, 아이들은 소파에 앉
아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나를 기다리곤 했다. 내가 일
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나와 놀고 싶어했
고, 가끔은 마당에서 뛰어 노는 때도 있었다. 아내가 옷
에 묻은 잔디얼룩이며 흙을 없애느라 애쓸 거라는 데까
진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한마디
의 불평도 없었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 천식을 앓았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밤마다 기침과 호흡곤란 때문에 우리 부부는 늘
잠을 설쳐야 했다. 이것도 우리 부부간의 불화를 가져
왔다. 아내는 내가 자기만큼 일어나서 아이들을 들여다
보지 않는 것이 불만이었던 것이다.
또한, 우리 부부는 내가 하는 일 때문에 적잖이 말다
툼을 했던 것 같다. 출판사의 영업을 할 당시 나는 여러
날을 길 위에서 보내야 했고, 내가 맡고 있던 지역이 미
국 서부의 뉴욕, 버팔로, 로체스터, 사이러쿠스였기 때
문에 거의 여섯 시간에서 여덟 시간을 운전해서 집에 오
는 것이 예사였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시간 동안 집을
비워야 했다. 아버지의 보좌관으로 일할 때는 1년에 서
너 번 유럽을 방문하기도 하고, 나중에 장로가 되어서도
캐나다, 유럽, 심지어 아프리카까지 종종 여행해야 했
다. 그리고 언제나 여행 때마다 ‘너무 중요한 일’이라
는 식으로 변명을 했지만, 나의 바쁜 일정에 맞춰야만
하고 늘 아이들과 집에 남아 있어야 하는 아내의 마음을
풀어 주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뉴욕타임스지 사건이 터졌다. 길 위
에서 힘든 날들을 보낸 뒤라 나는 아이들이 내 주변에서
즐겁게 노는 동안 잠시 신문을 펼치는 것이 그리 잘못이
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생각이 달랐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내가 얼마나 이기적
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가끔, 만약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처음부터 서
로를 용서하는 것을 배우지 않았다면 결혼 생활이 어떻
게 되었을지 생각해 보곤 한다. 너무 많은 부부들이 한
침대에서 자고, 같은 집에 살지만 그들 사이를 갈라놓은
분노의 담 때문에 마음으로는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
이 담을 이루고 있는 벽돌이 겉보기엔 매우 작을지도 모
른다. 결혼 기념일을 잊어버린다거나, 사소한 오해, 또
는 모처럼 계획했던 가족 소풍을 망치는 직장의 모임 등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아내들은 남편이 빨래
할 옷을 세탁 바구니에 넣는 대신 그냥 내던져 놓을 때
짜증을 내고, 남편들은 아내들이 자기들도 하루종일 일
했다는 사실을 자꾸 확인하려고 할 때 기분이 나빠지기
도 한다.
위기를 겪고 있는 많은 부부 관계는, 단지 인간은 불
완전하다는 것을 깨닫기만 해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말다툼이나 불화가 없는 관
계가 ‘좋은’ 부부관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비
현실적인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그들은 금방 결혼에
환멸을 느끼고는 얼마안가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
로 갈라서고 마는 것이다.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것은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알
게 모르게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한
다. 그리고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유일하게 확실한 해결
방법은, 필요하다면 하루에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매일 함께 기도하지 않는다
면 결혼 생활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긴장들은 불필요하
게 더 크게 번지고 말 것이다. 열심 있는 기도 생활을 통
해 부부는 하나님께 집중하며 두 사람의 하나됨을 지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C.S. 루이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매일의 삶에서 끊임없이 화나게 하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 위세 부리는 시어머니와 폭력을 휘
두르는 남편과 바가지를 긁는 아내와 이기적인
딸과 거짓말하는 아들을 용서하는 것, 어떻게 이
것이 가능할까? 내가 아는 단 한가지 길은 우리
가 서있는 자리를 기억하며 매일 밤마다 “우리
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우리가 기도하
는 대로 사는 것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
신의 죄도 용서받을 길이 없는 것이다. 이것을 거
부하는 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를 거부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예외도 없으며, 하나
님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실 것이다.
나의 장인과 장모이신 한스와 마그리트 마이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용서의 능력을 정말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장인은 매우 고집스러운 분이셨다. 그
리고 그것 때문에 장모님과 몇 차례 별거를 하시기도 하
셨다. 열성적인 반군국주의자셨던 장인은 군입대를 거
부했다는 이유로 1929년 결혼 후 한 달도 못 되어 투옥
되셨다.
석방 후에도 얼마 되지 않아 두 분은 다시 떨어져야
했다. 브루더호프를 알고 방문 중이던 장모님께서 공동
체에 참여하기를 원했지만, 종교 사회주의자였던 장인
은 공동 생활에 대해 사뭇 다른 생각을 갖고 계셨기에
장모님과 뜻을 달리했던 것이다. 장모님은 바로 전에 첫
아이를 출산한 상태였기에 장인에게 같이 살자고 애원
했지만 장인은 고집을 굽히지 않으셨다. 하지만 몇 개월
동안의 끈질긴 설득 후에야 장인은 브루더호프에 들어
오게 되셨다.
결혼 생활이 삼십 년이 지나고 열한 명의 자녀를 둔
후에도 두 분은 또 한 번 별거를 하게 된다. 1961년 당
시 두 분은 남미에 사셨고, 브루더호프는 엄청난 내부적
혼란과 격변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
할 수 없었고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었던 장인은
가족과 공동체를 떠나게 되셨다. 그 결과 장모님과 자녀
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고, 장인은 고집을 꺽지
않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자리를 잡아서는 그곳에서
11년간 사셨다.
두 분 사이에는 드러나는 심한 적대감이 있었던 것
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관계가 회복될 기미도 보이지 않
았다. 서서히 쓴뿌리의 담은 높아져 갔고, 두 분을 영원
히 갈라놓을 것만 같았다.
1966년 내가 두 분의 딸인 베레나와 결혼식을 올릴
때에도 장인은 참석치 않으셨고, 우리 아이들은 외할아
버지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자라나야 했다.
1972년 나는 부자간에 화해할 계기를 마련하고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처남과 함께 갔다. 장인은 처음에
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장인은 오로지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려고만 하셨고, 자기가 얼마나 많이 상처
받았는지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만을 원하셨다. 그런
데 우리가 떠나기 전 날, 마음의 무슨 변화가 있으셨는
지 장인이 미국에 한번 방문하겠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장인은 두 주간만 방문할 것이며 왕복표를 끊었다는 것
을 굳이 강조하셨다. 그러나 이것이 시작이었다.
마침내 장인이 우리를 방문하기는 했지만 우리가 걸
었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장인은 쉽게 용서할 수
없으셨던 것이다. 우리는 지난 날의 묵은 문제들을 말끔
히 없애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면서 장인을 오랜 세월 동
안 가족들에게서 멀어지게 만들었던 사건들에 대해 책
임을 인정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단 하나 우리 사이
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자신의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장인이 잘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장인은 용서하기 위해 필요한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없
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전환점이 될 사건이 있었다. 공동체
회원 모임을 하는 중에, 폐암으로 죽음을 기다리던 나
의 백부 한스 헤르만이 있는 힘을 다해 장인에게 걸어가
서는, 장인의 가슴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보게, 변화는 여기에서 일어나야만 하는 걸세.” 백부
가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백부는 코를 통해 튜브로 산소 공급을 받고 있었고, 거
의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 말에 장인은 완전히 무
너져 내렸으며 얼었던 마음이 봄 눈 녹듯 녹아 내렸다.
이 일 후, 장인은 아르헨티나에서의 일을 마무리한 후
장모님이 계신 공동체로 다시 돌아오셨다. 그리고 십여
년 전처럼 다시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공동체 일원이 되
셨다.
장인은 장모와 떨어져 살면서도 다른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으셨고, 장모는 그때까지 장인을 위해서 매일 기
도를 쉬지 않으셨다. 두 분 다 상처를 깊이 받으셨기에
서로간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사위
로서 나는 두 분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을 쭉 지켜 보았
다. 그리고 16년 후에 장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두 분
은 자식들과 손자 그리고 증손자들과 함께 사랑과 기쁨
속에서 여생을 보내셨다.
비록 우리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한 행동에 대해서는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인간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것은 용서하는
것보다는 인간적인 정의감을 이루는 데 중점을 둔 질문
으로 매우 까다로운 문제이다. 나의 장인 장모님이 경험
하셨듯이, 용서는 정의 그 이상이다. 용서는 거저 주어
지는 선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
람에게는 용서가 비이성적이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지
도 모른다.
나의 장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오랜 세월 동안
의 헤어짐도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간음이나 학대로
인해 파괴된 부부 관계도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을까? 예
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모세가 이혼을 허락한
것은 인간의 완악함 때문이었으며, 이제는 더 이상 타당
한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화
해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반면 이혼한 후에 재혼하는 사
람은 앞으로의 화해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없애 버리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불가피 할 경우가 있
지만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 결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신실한 사랑 뿐이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와 긴밀히 교제하고 있는 한국
쉴터 공동체의 박한결 자매의 사연은 어떠한 배
신의 아픔도 용서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결 자매는 대학생 시절, 자신을 무겁게 누르는 삶
에 대한 절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힘들게 살아가
던 중에 쉴터 수양회에 참석해서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신실한 가정을 이
룰 희망을 품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서 딸 지혜를 낳았
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생각만큼 순탄하지 않았고, 전
혀 상상도 못할 일이 한결 자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저는 남편이 날 사랑하고 우리 아이 지
혜가 있으니 나는 행복하다는 생각을 붙들고 있
었습니다. 남편은 저와 지혜에게 더 관심을 쏟는
것 같았고 저도 남편을 믿었습니다. 직장에서 퇴
근하는 시간이 늦어져 새벽에 들어오는 날이 잦
아져도 가족을 위해 고생하느라 그렇겠지, 라고
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제 감정은
알 수 없이 우울해지고 남편도 그전과 달리 곧잘
불만이 쌓여 갔습니다. 어느날 우연히 남편의 전
화 통화를 통해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몸을 떨었습니다. 1년 전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
에 ‘한 번은 용서하지만 더는 절대 안 된다, 그
땐 이혼이다.’라고 생각해 오던 터였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배신
감과 분노에 압도되어 제발 나가달라고 남편에
게 애원했습니다. 그동안 어려운 상황들을 참고
살아왔던 것이 너무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습
니다. 저는 자고 있는 지혜 옆에 누워 울음을 삼
키며 최대한 냉정해지려고 했지만 몸이 덜덜 떨
리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이대로 내 존재가 사라
졌으면 했습니다. 이제 막 세돌을 넘긴 지혜를 생
각하면 왈칵 눈물이 쏟아지면서, ‘내가 정신차
리고 살아야지.’ 생각하면서도 거절감과 자신에
대한 연민 때문에 감정이 복받쳐 주체할 수 없었
습니다. ‘이러다가 내가 죽겠구나, 이러다가 정
신이 나가는 거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
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분명 하나님의 계획이 있
을거야. 그래야만 해. 예수님, 도와주세요.’라고
되뇌이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
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우리 가정의 비전과 말씀
을 기억나게 하시며 두려워 떠는 제 영혼을 어루
만져 주셨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남편
은 미안해 하기는커녕, 날카로운 말들로 저를 괴
롭혔습니다. ‘당신도 젊었을 때 좋은 사람 다
시 만나라. 당신도 충분히 만날 수 있다.
아이는 당신이 키우면 좋지만, 싫다면 고아원에 보내
라.’라는 그 사람 말에 총이 있었다면 그 누구도
아닌 제 손으로 그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
의 말들을 생각하면 거절감과 수치심, 분노, 두려움
으로 견딜 수 없었고, 잊으려 하면 할수록 영화처럼
또렷이 기억날 뿐이었습니다. 남편이 ‘당신은 그
렇게 자기 인생에 대해 자신감이 없느냐 ? ’고 할
때는, 모든 원인이 내게 있는 것 같았으며, 헤어지
지도 못하는 바보 같은 내 자신이 미워지고 싫어
졌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는 내 자신이 증오스러
웠고, 이런 상황을 허락한 하나님도 원망스러웠
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괴롭힐 대로 괴롭히다가 연민
에 빠져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저의 영혼이 파
괴되어감을 느꼈습니다. 몸은 살아있지만 영혼
은 지옥에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이 용서하는 것이라면 그 길을 가야
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용서는 내 의지의 선택이
란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나 혼
자는 어떠한 선한 길로도 갈 수 없다는 고백과 함
께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제 안에서 죄와 하나님
을 향한 믿음의 싸움이 치열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용서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쉽지 않았고,
한 번에 끝날 일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새로운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
는 사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돌덩이가 옮겨지
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
님의 얼굴이 확대되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것은 위엄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저주받은 인간의 형상이었습니다. 치욕적이고 무
자비한 십자가 형으로 인해 오열하며 입을 커다
랗게 벌리고 부르짖는, 아무런 기풍도 느낄 수 없
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도 끔찍해서
눈을 돌려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
은 죄악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제가 가야할 길
이었습니다. 그토록 처참히 죽어야 했던 것은 바
로 제 자신이었습니다. 자기가 죄인이면서도 다
른 죄인 용서하기를 거절하는 저의 모순된 모습
은 하나님의 자비는 받아들이면서 그 자비를 베
풀기는 거부하는 자였습니다.
그제서야 공동체 식구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를
얼마나 용납하고 용서해 주었는가를 깨닫게 되었
습니다. 이기적인 저를 평생 용납한 부모님, 같이
사는 동안 저를 용납하고 용서한 공동체 형제 자
매들.... 또한 저는 남편만이 사단의 종노릇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정작 제 자신이 어둠의 세력에
갇힌 자라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제 자신이 바
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인 것을 다시 한 번 깊
이 깨닫게 되면서 남편을 용서하지 않을 수 없었
습니다.
남편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내가 남편에게 행
했던 무관심한 태도와 잘못들이 기억났습니다.
과거에 남편이 저의 사랑없음으로 겪은 고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제 잘못에 대해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분노를 품고 찾아갔던 그 여
자의 집에서 그녀를 향한 강한 연민이 넘쳐 그녀
에게 용서한다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오기
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자매를 위해 기도
해 주었습니다. 실제로 용서는 가능했으며, 그 가
운데 남편과 더불어 제 자신이 치유를 경험하게
되었고, 더욱 감사한 것은 그제서야 십자가의 의
미를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두 사람은 1998년에 영국 브루더호프를 방문해서
몇 개월 동안 지내면서 하나님께서 가족에게 주신 사랑
을 재확인하였고, 현재 쉴터 공동체에서 부부간의 깊은
신뢰 가운데 생활하고 있다.
외도로 인한 신뢰 관계의 파괴가 회복되려면 여러
해가 걸릴 수도 있다. 처음에는 둘이 따로 떨어
져 살면서, 두 사람이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상
담을 받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두 사람은
부부간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의지적으로 노력
해야만 한다.
이 책을 쓰기 시작할 때, 나는 외도로 인해 결혼 생
활이 파괴된 한 부부를 상담하고 있었다.
에드와 캐롤은 결혼한 지 9년이 된 부부다. 결혼 전
에도 이미 에드는 심한 술꾼이었고, 이 문제는 초기부터
결혼 생활에 심각한 긴장을 가져왔다. 한 집에 살긴 했
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자꾸 멀어져만 갔다. 결혼한 지
몇 년 뒤부터 에드는 이웃집 여자와 은밀한 관계를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캐롤은 자꾸만 우울해지
는 자신을 발견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에드와 캐롤은 1990년 중반에 처음으로 브루더호프
에 왔고, 며칠 후에 에드는 아내에게 그의 과거의 불륜
관계를 고백했다. 그 관계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
데도 에드는 자신의 죄책감 때문에 마음에 평안을 누리
지 못했던 것이다. 캐롤은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오래 전부터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을 갖긴 했지만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것이다. 캐
롤은 억누를 수 없는 분노 속에서, 절대로 용서할 수 없
다며 에드에게 이혼하자고 소리쳤다.
캐롤의 그런 기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
나 나는 처음부터 유일한 치유의 방법은 오로지 용서하
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캐롤에게 지금
좌절한 채 주저앉는 것은 두 사람을 더욱 갈라놓을 뿐이
며, 또한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다시 결합시키실 수 있
는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러면서 나
는 동시에 두 사람에게 당분간 따로 생활하면서 상담을
받도록 했다. 이런 경우의 별거는 성경적이다. 성경에는
간음을 한 사람과 사는 것은 동일하게 간음을 하는 것이
라고 기록되어 있다(고전 6:15-16). 또한, 에드와 캐
롤은 떨어져 있음으로 해서 자신들의 감정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일엔 즉효약이 없고 오랜 시
간이 필요하며 커다란 아픔이 따르기 마련이다. 밑바닥
에서부터 다시 새롭게 관계를 세워야만 하는 것이다.
에드와 캐롤은 여러 달 떨어져 지내는 동안 놀라울
만큼 관계가 좋아졌다. 처음에는 전화로 안부를 묻는 정
도였는데, 점점 마음을 열게 되면서 대화가 길어지고,
나중에는 서로 만날 정도까지 되었다. 에드는 술을 끊었
으며, 여러 달 동안의 고통스러운 후회의 시간 뒤에 자
유와 기쁨을 누렸다. 캐롤도 수없이 힘겨운 순간들을 싸
워 나가야 했지만, 정말로 새롭게 출발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곧, 캐롤은 에드를 다시금 사랑하게 되
었고, 아이들과 함께 에드를 위해 매일 기도하기 시작했
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캐롤이 에드를 완전히 용서
할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일단 캐롤이 자신도 그들의
문제에 다소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녀는 겸
손히 에드의 입장에서 그를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열 달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다시 결합해서 행복하
게 지내고 있다. 두 사람의 새로운 출발을 기념하는 축
하 예배에서, 에드와 캐롤은 서로에 대한 용서와 새로
운 결혼 생활의 시작을 여러 공동체 식구들 앞에서 선
포했다. 그런 다음, 둘은 기쁨에 찬 얼굴로 새 반지를 교
환했다.
우리 주위에는 에드와 캐롤처럼, 외도로 인한 배신
감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부부들이 수없이 많이 있
다. 하지만 나는 다른 부부들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관
계 회복을 할 마음만 있다면, 서로 간의 용서와 사랑을
통해 어떤 고난의 폭풍우라도 견디어 낼 수 있다고 확
신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2 선배님! 행사에 필요한 상품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1 남경민(44회) 2006.08.07 2952
221 선,후배님및 32회외로운동기분들 용기가지세요 성정환 2010.02.21 3024
220 서울동창회장 취임사 홍용찬 2006.08.08 4284
219 새해 성공하세요... aaa 2006.08.08 2933
218 새로운 홈페이지 1 오기묵(23) 2007.10.08 6122
217 새 홈페이지에 대한 기대를 가지며.. 1 강영녕 2006.07.27 2945
216 삼가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박대동 2012.07.26 1834
215 살길은 "절대투표제" 뿐이다. 이헌진(10회) 2006.08.07 3142
214 사람을 찾을려구요..... 1 희망 2006.08.08 2650
213 사람을 찾는데요. 여영일 2008.08.12 3230
212 사람(1970년생 김봉석님)을 찾습니다. 1 봉석님 2018.01.21 297
211 사단법인 대한수상스키ㆍ웨이크보드협회 제17대 회장 취임식 동창회 2013.05.07 1588
210 북괴의 지뢰 매설 2 file 구문굉 2015.11.02 1226
209 부산대학교 최고산업기술정보과정 모집 안내 부산대학교 2006.08.08 2621
208 부산 촌놈 서울 입성기 구문굉 2020.07.12 785
» 부부간의 용서 file 성정환 2009.11.26 2892
206 봉황대기 야구 우승 관련 신문 광고 안내 3 동창회 2006.08.07 2809
205 백두대간종주 축하드립니다 황문찬(32회) 2006.08.08 2919
204 백두대간종주 국제신문기사 황문찬(32회) 2006.08.08 3166
203 백두대간 종주를 꿈꾸는 초보자를 위한 좋은 책 한 권을 소개드립니다 최근호 2009.06.07 326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7 Next
/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