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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은 내가 3 때였고 태어나 처음으로 서울을 구경했던 해다.  

       당시는 제39 회 전국체육대회가 건국 10주년과 겹쳐 꽤 큰 행사로 치루어졌다. 

우선 이승만 대통령께서 서울운동장에 오셔 축사를 직접 하셨고 동대문 운동장의 메인 스타디움은 물론 야구장과 기타 구축물들도 본 모습을 되찾아 말끔 히 단장을 하고 있었다.

 

먼저 내 얘기를 하자면 경남 중 2학년 당시 야구 선수로 뽑혀 구포에서 합숙 까지 했던 전력까지는 좋았으나 학교로 되 돌아온 후 자그마한 목판에 그림을 다듬어 깎는 도공 시간에 그만 예리한 칼에 손가락의 인대가 다치는 사고가 나 결국은 더 이상의 야구는 할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다.

 

세월이 지나 고등학교 1학년이 마악 되고 난 어느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고 하니 3학년인 조상묵 선배와 2학년이었던 김희련 선배가 나를 븥들었다. 조상묵 선배는 나를 보자마자 "~가 니 말하는 그 아가?" 하고는 김희련 선 배를 돌아 보았다. 김희련 선배는 얼른 그렇다는 대답을 하고는 "구문굉이 니 할 수 없다. 내 따라 가자

마치 나는 포로가 된 것처럼 김희련 선배를 따라 부산공설 운동장에 가까운 수원탕으로 꾸벅 꾸벅 따라갔다. 말하자면 야구부의 모든 도구함이 바로 그 수원탕이라는 목욕탕의 한 켠에 맡겨져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우리 학년의 경남중 야구 선수들은 졸업 후 무려 네 명이나 서울 경복고교 등 타 학교로 스카웃이 되어 빠졌기 때문에 내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합류를 해도 우리 야구부의 인원수는 모두가 11명 밖에는 되지 않았다.

 

어느듯 시간이 흘러 나에게도 처음으로 서울 구경을 한번 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누가 보더라도 경남고는 1년 전 그러니까 내가 중3 당시 청룡기 대회에서 전국 우승을 했던 터라 당시 부산팀 끼리의 예선전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 아도 되는 처지로 여겼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예선전에서 당시 약 팀이었던 부산고등학교에 역전 패를 당해 그만 좌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생각이 달라졌다물론 그런 일이 있은 후 야구를 그만 둔다는 것도 그야말로 눈치 보이는 일이었으나 내가 계속 해 봐야 일년 선배들이 모두 포지션을 꿰차고 있어 별로 나인 안에 들어갈 희망도 없었던지라 체면불구 야구를 그만 두었다.

세월이 잠시 흘러 내가 3학년이 마악 되자 당시 체육 선생님이셨던 정규혁 선생님께서 교무실도 아닌 곳에서 조용히 나를 부르시더니 그야말로 나로서는 엄 청나게 생각되는 일을 맡기셨다.

 

내용인 즉슨 당시는 다소 생소했던 운동인 11인제 핸드볼(그때는 송구로 통했 다팀을 내가 만들어 학교 대표로 시합에 나가라는 것이었다.

물론  단거리는 내가 육상부는 아니었지만 학교의 릴레이 선수로 11초 상반을 뛰었을 만큼 빠른 데다 야구까지 했으니 공을 던지는 정확도가 딱 안성맞춤이 라고 생각을 하셨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분위기를 소개하자면 11인제 핸드볼은 지금과 같은 좁은 공간에 서 뛰는 것이 아니고 바로 축구장에서 골문 앞에 반원을 그려 놓고는 시합을 하는 것이었고 포지션도 축구와 꼭 같아 시합 때면 우리는 으레 축구부의 유니폼과 축구화를 빌려 신고 시합을 했다. 그리고 더 우스운 것은 이 운동에 실제 시합 경험을 해 본 선수는 경북 중학 시절 선수로 뛰었던 1학년의 이융자 군 밖에는 없었다.

 

룰은 우리가 평소 체육 시간에 늘 상 그와 비슷한 게임을 많이 해 왔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는 않았으나 선수들이 어떤 방법으로 연습을 하는지는 이융자군에게 묻기도 했는가 하면 가까운 경남 상고 팀의 연습장에 슬쩍 들어가 컨닝을 하기도 했다.

당시 부산에는 두 학교가 이미 핸드볼을 하고 있었고 대구에 있는 학교들은 연조가 다소 긴데다 전주나 서울에서는 막강한 팀들이 있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결국 나는 선수들을 차츨 해 주장과 코치를 겸하면서 부산에서는 첫 시합부터 우승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가을에는 경남의 대표로 제 39회 전국체 전에 참가를 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는 당시 막강하다던 전주고와 양정고 그리고 광주 상고를 각각 꺾고는 크게 기대도 하지 않았던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서울의 첫인상은 도로가 매우 넓은 것이었다. 우리는 화신 백화점에서 얼마 멀지 않은 종로 2가의 뒷길에 있는 현대여관에 투숙을 하였고 그 부근의 다른 여관들도 지방에서 온 갖가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특별한 것은 당시 내 키가 177정도는 되었는데 서울에는 나보다 키가 큰 고등학교 학생들이 너무 많이 눈에 띄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또 매우 특별한 것은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는 티비 방송사가 없었는 데 화신 맞은편 조그만 공터에는 어떤 건물의 옆구리에 선반을 달아 놓고서는 17인치 정도 되는 조그만 테레비를 얹어 놓고는 밤이면 미8군에서 방송하는 것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여 나는 그것이 매우 흥미롭게 여겨졌다 

 

새벽이면 조용한 말투로 여관방마다 앞에 다가가서는 "쌍금탕이오. 쌍금탕."하 고는 가방을 든 어떤 나이 든 분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후 유니폼을 입고 연습장으로 나갈 때쯤에는 지게에다 자그마한 독을 얹고 그 옆에는 포장을 해 가느다란 새끼줄로 둘둘 말아 놓은 것을 짊어지고는 외침을 하는 나이든 분을 매일 볼 수 있었다. "새우젓이오. 비웃드렁.."  "새우젓이오. 비웃드렁.." 이라는 말을 연거푸 외치면서 지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도대체 새우는 알겠는데 비웃은 무엇이며 드렁은 무엇인가가 궁금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모두가 시골서 온 사람들뿐이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60이 가까웠을 때 우리 동네 공원에는 늘 상 저녁을 먹고  서로 모여 환담을 나누는 어른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정부의 요직에 있었던 80이 넘은 서울 토박이 어른이 한 분 계셨는데 내가 그동안 몰랐던 얘기까지 많이 해 주셔 비로소 알게 된 일들도 더러는 있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것 은 자기가 어렸을 때  곶감은 본 적이 있었지만 감은 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그것은 비단 서울 뿐 아니라 경기도 일대에서 살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 했다. 지금이야 서울뿐 아니라 북한에서도 재배를 한다는 말을 들었건 만 참으로 기후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절감 했다

 

이무렵 나는 얼른 생각이 나는 것이 있어 질문을 드렸다.  저가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어떤 장수가  "새우젓이오. 비웃드렁.."  "새우젓이오. 비웃드렁.." 이라는 말을 외치는 것을 들었는데 비웃드렁은 무엇입니까? 라고 했더니 비웃은 청어 말린 것을 얘기하고 드렁~ 하고 뒷 꼬리 말을 흐리게 하는 것은 옛날에는 서울에 벙어리가 되는 아이들이 많아 뒷말을 흐려 그것을 예방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을 자기도 어른들로 부터 들으셨다고 했다. 나는 촌놈이 처음 서울 구경을 한 뒤 40여년이 지나서야 풀 수 있었던 답이라 기분이 매우 개운함을 느꼈다. 

 

                       2020.7월 13회 구문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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